서울시 뉴타운 구상 얻는 것과 잃는 것
서울시는 지난달 30일 서울시 뉴타운사업 신정책 구상계획을 발표하여 앞으로 뉴타운․정비사업 방향을 소유자 위주에서 거주자 중심으로, 사업성과 전면철거 중심에서 ‘인간답게 살 권리’를 보장하는 공동체, 마을 만들기 중심으로 전환한다고 제시 하였다. 이에 따라 뉴타운․정비사업 전체 1,300개 구역을 실태조사 대상(610구역)과 갈등조정대상(866구역)으로 나누어 구역별 상황에 맞는 정비해법을 찾겠다는 것이다. 1,300개 구역 중 사업시행인가 이전단계에 있는 610개소는 실태조사를 통해 계속 추진하거나 해제를 결정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서울시의 계획구상은 1983년 합동재개발방식이 도입된 이후 지속적으로 문제제기되어 온 주민의 주거권을 보장한다는 차원에서 거주자 중심으로 정책방향을 바꾸겠다는 의지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전면철거 방식으로 고착된 뉴타운․정비사업 관행을 바꾸겠다는 의도도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발표 내용은 지난 40여년 이상 지속된 전면 철거방식의 개발시스템을 바꾸겠다는 것으로 사회적으로 커다란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어떤 정책이든 정책을 계획할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가치가 무엇이냐에 따라 정책방향은 달라진다. 이번 서울시의 계획을 보면 가장 중요한 가치를 주거권 보장, 사람중심, 거주자 중심에 두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뉴타운․정비사업은 다른 어떤 중요한 문제보다도 주거와 주민의 삶의 문제가 핵심사항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서울시 계획의 원칙과 방향은 존중되어야 한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이러한 가치는 사회적으로 공감을 얻어야하고 더구나 해당지역에 살고 있는 다양한 유형의 주민에게 공감을 얻어야 더욱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또한 선택한 가치의 결과가 좋게 나타나야 할 것이다.
만약 사람들이 다른 측면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인 행복추구권, 즉 더 나은 주거공간에서 살고 싶어 하는 권리가 존중되지 않는다면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서울시의 정책 변화로 거주민의 주거권 문제는 유지될 수 있지만 더 나은 주택과 주거환경에서 살고 싶어 하는 시민의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새로운 사회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주거권은 세입자나 영세 가옥주 등에게는 아주 중요한 가치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일반 가옥주 입장에서는 주거권은 이미 실현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보다 나은 주거환경에서 살고 싶어 하는 행복추구권을 더 중요하게 생각할 수 있다. 주거권이 더 넓은 의미에서 행복추구권을 포함한다면 서울시의 주거권 논의는 반쪽짜리가 될 수도 있다. 이렇듯 뉴타운․재정비사업에는 위에서 언급한 두 가지의 보편적 가치가 공존하고 있다.
금번 서울시의 정책구상은 좋은 원칙과 방향성에도 불구하고 추진하는 과정에서 얻는 것과 잃는 것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모든 정책이 긍정적, 부정적인 효과를 동시에 갖게 되지만 이왕이면 얻는 것이 더 많을 때 정책은 호응을 얻을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서울시 뉴타운 출구전략이 발표한 내용에 따라 추진될 경우 향후 얻게 될 것과 잃게 될 것을 간략하게 정리해 보고자 한다.
먼저 얻게 될 것으로는 첫째, 서울시가 가치를 두는 것처럼 재정비구역 거주민의 보편적 주거권은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세입자나 영세 가옥주는 재정비로 인한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재정비 구역에는 일반적으로 가난한 계층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약 60%~70%가 세입자이며 다른 지역에 비해 평균적으로 소득수준이 낮은 가구가 많이 거주하고 있다. 이들은 열악한 주거공간이지만 각자 개별가구의 경제적 형편에 맞추어 살고 있다. 정부의 주거지원대책이 매우 부족한 현실에서는 개발하지 않는 것이 그나마 주거권을 유지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 될 수 있다.
둘째 서울시 입장에서도 정책적 부담을 경감시키는 효과가 있다. 무수히 지정해 놓은 뉴타운구역을 다 개발해야 하는 정책부담과 아파트위주의 기형적 도시개발 부담, 서민을 위한 저렴주택 감소와 재정비시 저소득층 주거공간을 마련해야 하는 재정적 부담, 개발갈등 등이 완화될 수 있다. 현재처럼 서울시가 느끼는 정책적, 재정적 부담 하에서는 적극적인 개발드라이브 정책보다는 소극적인 방식으로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 더 유리할 수 있다.
다음으로 잃게 될 것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을 예상해 볼 수 있다. 첫째, 정책 무게중심의 편중성에서 오는 역효과가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사회적 약자 및 소수의 의견을 들어 정책에 반영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소수의 의견이 정책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것과 정책에 반영되어 대안이 모색되는 것은 구별되어야 한다. 소수의 의견은 정책에 반영되어 소수를 위한 적정대안을 모색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소수의 의견(예로 토지등 소유자 30%이상이 구역해제 요청시 해제)이 정책의 방향성을 바꾸는 것은 다른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많다. 기존 연구결과에 따르면 재정비(예정)구역에 살고 있는 많은 토지등소유자들이 개발에 찬성하고 있으며 소득이 높거나 잘 사는 가옥주일수록 재정비사업을 빨리 진행하여 주거상향 또는 현재보다 개선된 주거환경에서 살고 싶어 하는 경향이 높다.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재정비구역의 가구특성상 서울시의 정책은 균형성을 잃을 수 있다.
둘째, 서울시는 정책변화에 따른 또 다른 파생적 부담을 안게 될 수 있다. 사업성이 없고 주거환경이 열악하며, 세입자가 많이 거주하는 지역일수록 구역해제를 요청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지역에서는 지역특성상 강동구 서원마을과 같은 재정비나 소단위 개발도 할 수 없는 문제지역일 수 있다. 개발할 것인가, 아니면 방치할 것인가, 개발한다면 공공재개발을 추진할 것인가, 아니면 자력재개발 형태로 추진하도록 유도할 것인가, 그리고 매몰비용 부담 등 지금 보다 더 많은 정책적, 재정적 부담을 요구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셋째, 아파트에 대한 선호증가와 공급량감소는 아파트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일부 고급 단독주택지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저층주거지의 주거환경은 아파트에 비하여 매우 열악하다. 주차 문제, 단열 및 난방문제, 쾌적성 문제 등 산적한 문제를 안고 있는 저층주거지는 거주자들로 하여금 아파트에 살고 싶어 하는 열망을 부추긴다. 최근 필자가 연구한 자료에 따르면 서울시 저층주거지 가옥주의 약 60%가 새로운 주택으로 아파트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는 아파트와 저층주거지(비아파트) 사이에 주거공간의 계층적 분화 현상이 뚜렷하며, 비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는 가구 중 많은 가구가 아파트에 살고 싶어 하는 경향을 보인다. 아파트에 대한 잠재수요는 아주 많다. 이러한 이유로 아파트에 대한 수요 대비 공급이 부족할 경우 아파트 가격은 상승할 수 있으며 아파트와 비아파트간에 발생하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심화 될 수 있다. 또한 구역지정이 해제되는 지역은 새로운 장밋빛 대안이 가시화되지 않는 한 주택가격이 지금보다 하락할 것이며, 해제되지 않는 지역과 주택자산가치의 격차도 커 질 수 있다. 따라서 지역간, 주거공간 유형간 계층 분화 현상이 더욱 확대될 수 있다.
그동안 우리는 뉴타운 등 재정비사업 과정에서 나타나는 수많은 문제를 지루하게 보아왔다. 그리고 언젠가는 어떤 방식으로든지 정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번 서울시의 정책구상은 재정비과정에서 소홀히 취급되어 왔던 중요한 가치인 주거권과 거주민 중심이라는 가치를 지키려고 한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우려와 아쉬움 또한 적지 않다.
뉴타운 및 재정비구역에 대한 정책방향은 중장기적으로 저층주거지 관리계획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설정되어야 하나 중장기관리방향에 대한 계획이 없이 뉴타운 정책구상만 발표되어 정책의 지속성과 신뢰성, 실현가능성이 반감되고 있다. 또한 정리는 하되 현재 구역별로 사업이 추진되지 않는 이유와 주민부담을 완화할 수 있는 대안을 먼저 충분히 검토한 후 차선책으로 주민의견을 수렴하여 해제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된다. 정확한 실태조사와 주민의견수렴은 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지원책을 찾는 관점에서 이루어져야 하나 구역 해제를 결정하려는 단초를 찾기 위해서 실시하려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리고 실태조사는 구역지정 이전에 실시되어야 하나 이미 구역지정을 해 놓은 상태에서 실시하는 것은 주민에게 혼란만 가중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다만 이제라도 추진위원회가 구성되지 않은 초기 단계에 있는 구역에 대해서는 실태조사를 실시하여 주민부담 등 주민의 알권리를 제공하고 추진 여부를 결정하도록 하는 것은 필요하다.
끝으로 서울시는 시민 누구나 공감하는 보편적 대안을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강동구 서원마을의 사례는 실험적 대안일 수는 있으나 보편적 적용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안으로는 한계가 있다. 서울시는 사람중심의 마을만들기 공동체와 소규모 정비사업 등 대안적 정비사업 방안을 계획하고 있다. 주민 부담을 최소화 하여 일반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방안을 빠른 시간 내에 보여줘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만약 대안이 현실성이 없을 경우 재정비 정책은 다시 미궁으로 빠질 수 있다.
김태섭 도시계획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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